

서해 끝섬, 서해의 독도인 격렬비열도.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한 7월 4일이 ‘격렬비열도의 날’이다. 다음달 4일은 선포식 1주기를 맞아 격렬비열도 일대에서 전 국민이 직접 섬을 오르고 체험할 수 있는 대대적인 해양문화축제가 펼쳐진다.
격렬비열도는 충남 태안군에 소속된 섬으로 대한민국 영해 서쪽 끝단의 범위를 결정하는 영해기점 섬이다. 태안에서 55km, 중국 산둥반도와 268km 떨어져 있다. 신진도 안흥외항에서 출항하면 가의도, 정족도, 옹도, 궁시도, 하사도, 난도, 우배도, 석도를 지나 서해 마지막 섬 격렬비열도에 이른다.
서격렬비열도와 동격렬비열도는 개인 소유의 섬이다. 한 때 중국인들이 이 섬의 매입을 시도하자 태안군민을 중심으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여론이 거셌다. 결국 정부는 영토 및 영해주권을 강화하고자 지난 1995년 철수시켰던 해양수산부 등대직원 4명을 20년 만인 2015년 7월 1일 자로 발령내고 2인 1조로 15일씩 근무토록 했다.

격렬비열도등대 김대환 소장은 “습도가 아주 높은 지대이고, 물이 귀해 빗물을 생활수로 사용하고, 2주 단위로 교대 근무하는 등 제한된 환경이지만 해양영토 수호를 위해 꼭 필요한 등대와 등대지기”라는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등대원이 근무를 시작한지 한 달 후인 2015년 8월에 EBS 한국기행 촬영팀과 함께 격렬비열도를 찾았다. 격렬비열도는 정기여객선이 다니지 않는다. 등대직원들도 신진도 외항에서 어선을 타고 오간다. 그날도 등대 직원 소개로 어선을 타고 섬으로 향했다.
나는 난바다의 섬에 도착한 다음날, 풍랑주의보를 만났다. 해상날씨는 사나흘 격렬했다. 서격렬비열도, 동격렬비열도, 북격렬비열도 삼형제 섬은 1.8㎞ 간격을 유지하며 서로 어깨 걸고 출렁인다. 섬과 해협 사이의 골바람이 정말 거칠었다.

격렬비열도는 화산폭발로 현무암과 유문암,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섬으로 7000만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섬으로 알려졌다. 섬과 그 주변은 참돔과 감성돔, 농어, 오징어, 멸치, 꽃게 등이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다.
격렬비열도는 3개 섬들이 기러기가 열 지어 날아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등대 옥상에서 바라보면, 특히 드론을 띄어 전체 섬을 내려다보면 황소가 드러누워 두 눈을 껌벅껌벅하며, 새끼섬들을 보호하는, 그런 모성애의 상징인 섬처럼 보였다. 그렇게 먼 바다로 다시 비상을 꿈꾸는 섬, 한민족의 내일을 밝히는 엄마의 섬처럼 맨 앞에서 행진하는, 그렇게 꿈꾸는 섬처럼 보였다.
“망망대해 그 너머/연사흘 흰 거품 물고/칠천만 년 꾹꾹 눌러 둔 고독이/마침내 폭발하더니만, 깊고 깊어 푸른/그 그리움 더 어쩌지 못하고/파도소리 뜨겁게 퍼 올려/등대 불빛을 밝히는/서해 끝 섬//온몸 뒤틀며 태어난 기억/파도소리 홰칠 때마다 귓전에 여전한데/두 눈 껌벅 껌벅/황소처럼 드러누워/또 무슨 꿈을 꾸는가”(박상건, ‘꿈꾸는 격렬비열도’ 중에서)
이 졸시는 풍랑주의보에 묶여 지내던 담당 PD가 시를 써달라고 주문했고, 이후 시 제목 ‘꿈꾸는 격렬비열도’는 그대로 한국기행 격렬비열도 편의 타이틀로 방영됐다.

환경부는 격렬비열도를 서해에서 바닷물이 가장 맑고 해안지형이 절경과 보존가치 높아 최상급으로 평가했다. 해양수산부는 서격렬비열도를 2014년 절대보전 무인도서로 지정했고, 2015년에는 우리나라 영해기점임을 표시하는 영구시설물을 설치했다. 2017년 5월에는 서격렬비열도를 ‘이달의 무인도서’로 선정했다.
기상청은 서해종합해양기상관측기지를 설치했다. 기상관측기지는 등대와 함께 난바다 해양감시와 파도 높이 등을 관측해 기상정보를 실시간 제공한다. 선박의 안전 항해와 우리 국민들이 바다를 보다 더 유용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태풍주의보는 사나흘을 넘기면서까지도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결국 나는 촬영팀과 함께 행정선의 도움받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3일 태안군 행정선 격비호를 타고 격렬비열도로 향했다. 태안군 가세로 군수는 배 안에서 열정적으로 격렬비열도의 어제와 오늘, 우리가 이 섬을 사랑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18년 군수로 취임 후, 정부 부처를 돌며 격렬비열도 국가관리 연안항 지정을 건의했다. 지난 2019년 충남도내 15개 지자체 연합체인 충남시장군수협의회를 통해 국가관리 연안항 지정을 위한 공동건의문 발표, 2020년 태안군·충남도 주관의 관련 정책토론회, 2020년 ‘카약 타고 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까지’ KBS ‘다큐멘터리 3일’ 방영, 2021년 8월 15일 KBS 광복절 특집으로 독도, 마라도, 격렬비열도 3개 섬을 거점으로 해양영토 수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선상 공연 방송에 이르기까지 격렬비열도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정말 열정적이었다.

그렇게, 지난 2022년 7월 4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 공포했다. 7월 4일이 ‘격렬비열도의 날’인 이유다. 정부는 2027년부터 본격적인 연안항 개발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2029년부터 국민 누구든 격렬비열도를 자유롭게 찾을 수 있고, 이로인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해양관광문화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가세로 태안군수는 “격렬비열도는 대한민국 최서단 영해기점으로 아주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그 가치가 높다.”면서 “우리 태안군, 충남도, 전 국민이 하나로 서해의 독도인 격렬비열도를 지키고, 청정바다와 섬을 보존하고 향유하면서 주민의 삶터로 힐링 쉼터로써 역할을 다하는 그런 해양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격렬비열도는 파랑의 영향을 크게 받은 암석해안으로 해식애와 각각의 바위섬으로 쪼개져 점점이 서있는 이른바 시스택이 장관인 섬이다. 섬에는 원추리, 해국, 억새 군락지가 있고 찔레꽃, 갯메꽃, 딱총나무, 산뽕나무, 천문동, 쇠비름, 쇠무릎, 동백나무 동굴, 사철나무 등이 자라며 괭이갈매기의 집단번식지이다.

해식동과 해식애의 신비로운 비경과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야생 동식물들의 보금자리이다. 바다 속은 15m까지 훤히 보인 청정해역으로 산호와 각종 해조류가 풍부해 제주해녀들이 원정 올 정도이다. 이런 해안지형 특성은 최동단 독도에 비해 등반과 레저가 가능한 점, 서남해 가거도와 최북단 백령도에 비해 접근성이 뛰어나면서 이들 해안절경과 생태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점이 장점이다.
섬에는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군락지가 원시림의 터널을 이루고 팽나무, 후박나무 등 다양한 희귀식생과 야생화가 피고진다. 사방으로 평지 없는 가파른 섬에는 사계절 쇠고비, 보리밥나무, 갯장구채, 땅채송화, 갯기름나물, 갯까치수영, 원추리, 유채꽃, 해국이 만발한다. 그런 야생화 밭을 지나 섬 끝 해안절벽에 이르자 짓푸른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저절로 함성이 터졌다. 조각품의 진열장처럼 펼쳐진 해식애의 절경은 마치 통영 홍도와 소매물도, 신안 홍도와 거문도 백도, 서귀포 주상절리대 알짜배기 해안풍경을 한 곳으로 다 옮겨 놓은 듯 천혜의 해안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37년간 등대원으로 근무했던 전 소청도등대 소장 조경호 씨는 1960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동안 직무교육을 받으러간 격렬비열도 황춘기 등대장을 대신해 결원을 채우고자 격렬비열도등대로 발령받아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노을 무렵이었는데 20여 마리의 강치 떼가 일제히 한 줄로 대열을 이뤄 헤엄쳐 가는 장면을 보았다고 전했다. 강치는 요즘 넓게 물개과로 많이 분류한다. 강치는 멸치, 오징어, 꽁치, 고등어 등을 먹이로 삼는데 이 해역의 어패류와도 일치한다.
이런 바다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다음달 격렬비열도에서 열린다. 7월 4일부터 이틀 동안 ‘격렬비열도의 날’ 1주년 행사가 태안군 신진항과 격렬비열도에서 열린다. 격렬비열도의 날 1주년 공식 기념식과 함께 축하공연, 거리공연과 무대공연이 펼쳐지는 항구의 밤 페스티벌, 격렬비열도 생태계를 체험하는 격렬비열도 투어, 격렬비열도 앞바다에서 요트와 수상오토바이가 함께 하는 해양레포츠 퍼포먼스 등 역사와 해양문화가 어우러진 다양한 프로그램의 국민축제가 열린다.


격렬비열도사랑운동본부 윤현돈 회장은 이번 행사와 관련 “격렬비열도 가치증진 조례제정 기념 및 지역경제 활성화, 영토인식 제고 및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자 마련했다”면서 “해양생테계 의식을 고취시키고 지속 가능한 지역문화행사로써 모범이 되고 지역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