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사흘 흰 거품 물고
칠천만 년 꾹꾹 눌러 둔 고독이
마침내 폭발하더니만, 깊고 깊어 푸른
그 그리움 더 어쩌지 못하고
파도소리 뜨겁게 퍼 올려
등대 불빛을 밝히는
서해 끝 섬
온몸 뒤틀며 태어난 기억
파도소리 홰칠 때마다 귓전에 여전한데
두 눈 껌벅 껌벅
황소처럼 드러누워
또 무슨 꿈을 꾸는가
대륙을 휘달리던 바람 소리를 키질하듯
산둥반도로 가던 장보고의 박동 소리를 풀무질하듯
독수리의 날개 짓으로 이 바다를 휘몰이 하는,
해안선 주상절리로 아로새기고
틈틈이 해국을 피워 흔들면서
다시 비상을 꿈꾸는 섬
멀리서 바라보면
유채꽃 원추리로 노랗게 출렁이고
등대지기 거닐던 동백 후박나무 밀사초 섶길 위로
포물선 그리며 푸른 바다에 수를 놓는
새들도 쉬어가는 삼형제의 섬,
격렬비열도
- 박상건, ‘꿈꾸는 격렬비열도’ 전문

7월 4일은 격렬비열도의 날이다. 2022년 7월 4일 국무회의에서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한 날이다. 빠르면 2029년부터 누구나 여객선을 타고 서해 끝섬에 갈 수 있다.
격렬비열도는 대한민국 영해 범위를 결정하는 영해기점 섬이다. 태안군에 55km, 산둥반도와 268km 떨어져 있다. 격렬비열도는 신진도 안흥외항에서 배를 타면 가의도, 정족도, 옹도, 궁시도, 하사도, 난도, 우배도, 석도를 지나 “망망대해 그 너머”에 있다.
“칠천만 년 꾹꾹 눌러 둔 고독이/마침내 폭발하더니만, 깊고 깊어 푸른/그 그리움 더 어쩌지 못하고/파도소리 뜨겁게 퍼 올려/등대 불빛을 밝히는/서해 끝 섬”
서해 끝섬, 격렬비열도는 7000만 년 전 화산폭발로 수면 위로 솟았다. 격렬비열도는 3개 섬들이 열 지어(格列) 날아가는 섬(飛列島)이라는 뜻이다. 북격렬비열도 정상에 등대가 있다.
“온몸 뒤틀며 태어난 기억/파도소리 홰칠 때마다 귓전에 여전한데/두 눈 껌벅 껌벅/황소처럼 드러누워/또 무슨 꿈을 꾸는가”
등대 옥상에서 보면, 특히 드론으로 전체 섬을 조망하면 마치 황소가 드러누워 두 눈을 껌벅, 껌벅거리는 모습이다. 그렇게 새끼섬들을 보듬은 모성애의 상징처럼...먼 바다로 다시 비상을 꿈꾸는, 우리 민족의 내일을 밝히는 섬처럼 보였다.
서격렬비열도와 동격렬비열도는 개인 소유이다. 한 때 중국인이 섬을 매입하려 하자, 태안군민들은 영토수호를 외치며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결국 정부는 영해주권을 강화 차원에서 1995년 철수시켰던 해양수산부 등대직원 4명을 20년 만인 2015년 7월 1일 자로 발령냈다. 그렇게 현재 등대직원 2명씩의 근무조로 섬을 지키고 있다.
“해안선 주상절리로 아로새기고/틈틈이 해국을 피워 흔들면서/다시 비상을 꿈꾸는 섬//유채꽃 원추리로 노랗게 출렁이고/등대지기 거닐던 동백 후박나무 밀사초 섶길 위로/포물선 그리며 푸른 바다에 수를 놓는/새들도 쉬어가는 삼형제의 섬”
주상절리대, 해국, 유채꽃, 원추리, 동백, 후박, 밀사초 등이 어우러진 천혜의 섬인 삼형제 섬은 1.8㎞ 간격으로 서로 어깨 걸고 출렁인다.
격렬비열도를 처음 찾은 것은 2015년 등대원이 파견된 여름날이었다. EBS 한국기행 ‘격렬비열도 편’에 촬영 때문. 풍랑주의보를 만나 등대에 사나흘 갇혀 있는데 방송사에서 시 한편을 부탁했다. 시 제목은 그대로 방영 타이틀명이 됐다. 2024년 태안군 ‘격렬비열도의 날’ 선포식에서 이 시를 낭송고 2025년 1주년 기념식에서도 낭송했다. 30년 동안 섬을 답사하면서 숱한 인연들이 많았는데, 격렬비열도도 그렇게 나에게 운명이 된 섬이다.
‘격렬비열도의 날’ 1주년 행사는 4~5일 양일간 신진도와 격렬비열도에서 동시에 열린다. 축하무대공연, 거리공연, 항구 페스티벌, 격렬비열도 투어, 격렬비열도 해양레포츠 퍼포먼스 등 다양하고 규모 있는 행사로 국민 축제로 발돋움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언론정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