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삶] 함석헌,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

‘저 하나 있으니’ 여한이 없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박상건 기자 2025-05-30 14:51:35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전문

 
함석헌 시비(사진=섬문화연구소DB)


독립운동을 위해 “만리 길 나서는 길”에 온 가족을 맡길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 세상을 참 잘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행복한 인생이고, 뭇 사람의 존경까지 받는 사람이다.

 
“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저만은 살려 두거라”고 부탁할 수 있고 부탁받을 대상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즈음 우리 사회는 이기주의와 배신, 갈등과 대립으로 도질 때로 도졌다. 그래서 이 시와 시적 배경은 더욱 절절하고 애끓는다. 지금 우리는 남북갈등, 남남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이 등나무 넝쿨처럼 서로 비비꼬고 얽히고 설키면서 반목과 진창의 세월을 살고 있다. 


사법, 입법, 행정에 이어 4대 권력이라고 언론에게 주어진 ‘상관조정기능’은 이런 난장판을 정리하라고 주어진 언론의 역할 중 하나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언론은 사사건건 상관하면서 당파성에 매몰돼 있다. 문제 해결보다는 갈등과 대립의 불씨를 키우고 확산키기는 역기능에 빠졌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역사의 세월을 낭비하는 청개구리 언론행태다. 

 
이런 극단의 사회를 조정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지대가 종교지도자 등 사회 원로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어른들이 없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경청과 공감, 수용과 인정이라는 기본적인 관계 커뮤니케이션 과정마저 무너졌다. 공방과 주장만 난무하다. 

 
함석헌 선생이 읊조리던 “저 하나 있으니”,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여한이 없는 세상, 부디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으련만.


함석헌 선생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 평생 인권운동가, 언론인, 재야운동가로 활동했다. 호는 씨알, 바보새. 19세에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 후, 소학교 교사 등을 전전하다가 오산학교 교사를 지냈다. 선생은 해방 후 월남, 1956년부터 장준하 선생 천거로 ‘사상계’ 논객으로 활약했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제목의 비평칼럼으로 유명하다. 1970년 월간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 장준하 선생 등 재야언론인들이 주요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 1월 군부독재에 의해 폐간됐다.


저서로는 ‘인간혁명’, ‘역사와 민족’, ‘뜻으로 본 한국역사’, ‘통일의 길’, ‘함석헌 저작집’, 시집 ‘수평선 너머’ 등이 있다. 1979년, 1985년 2차례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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