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 '바다의 찬가'

어깨 겯고 동고동락 수평선의 아침을 열던 45년의 세월들
박상건 기자 2025-07-11 09:44:59
바다의 찬가

 

                              박상건

 

어둠을 흔들어 깨우며, 먼 길을 돌아와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살의 바다를 보아라

밤하늘 별빛이 지고 난 해안가 그물 부표더미에

찬란하게 쏟아지는 영광의 햇살을 보아라


아침 바다를 달리는 흑산도 어선(사진=섬문화연구소DB)


삶도 사랑도 갯물 같은 번뇌를 털어내고

다시 아침바다에서 햇살 탈탈 털어내는 파도 같은 것

신열의 땀방울에 젖은 갯내음 자욱한 수평선 위로

둥둥 북채를 쳐 울리며 아침바다를 여는 것

 

지난한 시간들이 흘렀다

말뚝 쿵쿵 박아 세운 겨울바다에서

목선에 온몸을 맡긴 채 시린 손끝으로 건져 올리던 김발

보릿고개 시절 내 가족의 배고픔보다 먼저

대일 수출의 역군이 되었던 수산산업의 전사들

바다 깊이 내 한 몸 던져 해산물을 캐던

물길 보다 깊고 뜨겁던 모성애는 그 시절의 버팀목이었다

파시를 찾아 난바다를 떠돌던 사람들은 이따금

먼 바다에서 절망하거나 바다 밖으로 서럽게 넘어지곤 했다

그렇게 아득한 날들이 가고, 지금 청정바다 싱싱한 바다에서는

최첨단 선박과 어구로 오늘과 내일의 새로운 삶을 일구고 있다

 

저 드넓은 바다를 닮은 사람들은 안다

저 바다가 왜 큰 가슴으로 출렁이는지를

한번은 썰물로 비우고 한번은 밀물로 채우는 것처럼

산다는 것도 때로 갯벌처럼 질척이는 일이지만

이 갯강에 나지막이 엎드려 기다림의 희망을 캐내는 일이다

이 바다에서 산다는 것은, 마침내 한줄기 물길이

어푸어푸 파도치며 밀려와 우렁차게 물보라 치는 일이다

푸른 함성을 쏟아내는 일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를 향해 박수를 치듯이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

56만 수산인과 더불어 이 바다에서 메아리치는 일이다


변산반도 노을바다(사진=섬문화연구소DB)


 

저 드넓은 바다를 닮은 사람들은 안다

수협 45년의 청사(靑史)를 써온 저 바다의 깊은 의미를 

개발시대 부르튼 손잔등은 갯벌의 나이테로 기록되고

버거운 삶 울러매고 달려온 파도를 보듬던

바위섬의 상처에는 수많은 해산물의 둥지가 되었듯이

우리 비록 사는 일 힘들고 각져도 늘 수평으로 살자면서

서로 어깨 겯고 동고동락하며 수평선의 아침을 열던 45년의 세월들

 

어제처럼 오늘도 둥글둥글 해안선처럼 살자면서

불혹의 구릿빛 장형의 팔뚝이 힘차게 당기는

제2 창립정신의 다이나믹한 에너지를 보아라

상생(相生)의 추진기가 뿜어내는 하얀 포말을 보아라

치솟는 열정의 도가니를 보아라

마침내, 세상 물결 다 헤치는 강력한 초일류 협동조합,

세계경쟁의 바다에 등대처럼 우뚝 선 그대의 이름은,

뉴리더인 수협이어라!

 

그대는 아는가, 저 바다가 왜 푸른지를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 스스로를 수없이 채찍질하는 것처럼

이 바다에서 일신 우 일신, 일취월장 45년의 세월

처음 그랬던 것처럼, 우리네 삶도 사랑도 바다와 하나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바다와 어민과 수협은 한물결로 출렁이리라

이 바다에서 사는 일은

두 가슴이 한 가슴으로 행복의 집을 짓는 일이다 

한 사람 아닌 두 사람이 그물을 던지고 걷어 올리듯이,

한 사람 아닌 두 사람이 키를 잡고 삿대질을 하듯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운명처럼 숙명처럼

공동체 정신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Fresh Fish, Fresh Bank!

아, 우리는 위대한 수산인, 영원한 수협인이어라!

 

* 이 시는 ‘수협 창립 45주년에 부처’라는 부제가 붙은 2006년 수협 45주년 기념시입니다.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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