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 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서서
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
또는 바삐바삐 서녁 하늘을 깨워가는
갈바람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이 바닷가에서
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전문

송수권 시인은 외딴 섬, 산골을 전전한 상록수 교사였다. 시골살이가 천성이었고 천생 촌 선생이었다. 명예퇴직 후 서귀포 범섬 섬마을에 책상 하나 두고 집필에 몰두하기도 했다.
다시 변산반도 격포로 집필실을 옮겨 뻘밭 짓이기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등단작의 무대였던 지리산 맞은 편 섬진강변에 마지막 둥지를 틀었다. 아내가 보험 외판원으로 마련한 집필실이었다. 중고등학교 국어교사에서 국립대 문창과 교수가 된 후였다.
그렇게 시인은 “바삐바삐 서녁 하늘을 깨워가는/갈바람소리”와 “온몸을 태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백혈병으로 쓰러져 생사를 헤맸다.
시인은 돈도 피도 되지 못한 이녁의 삶을 한탄하며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 시인의 사랑에 하늘도 감동한 것일까? 시인은 이승을 떠났지만 못다한 삶을 아내가 쭉 이어 살고 있다.
시인의 작품 중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이라는 시가 있다. “내 마음속 기러기 몇 마리 날아 서해로 간다 그곳은 진펄밭 위의 겨울 강물이 따뜻한 곳, 아내가 차를 몰아주고”로 시작한다. ‘진펄밭’처럼 시인의 삶도 그랬다. 격포로 가는 길에 그 진펄밭이 펼쳐지는 모항이 있다.
이 시는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오늘 나는 격포에 이사 간다 책 몇 권, 솥단지 밥그릇, 국그릇 한 벌 등에 지고 너희 울음 따라간다 큰 울음 속에 작은 울음, 잠시면 저 노을 속에 묻힐 아무렇게나 차 속에 널어놓은 수저통에서 자꾸만 숟가락들이 비명을 지른다 이 수저통에서 튀쳐 나오지 못하고, 나는 그 동안 얼마나 세상을 향해 요란한 소리를 냈던가 아아, 수저통에 마지막 비치는 저녁 노을, 침묵 같은 울음 따라간다.”

“숟가락들이 비명을 지른다 이 수저통에서 튀쳐 나오지 못하고”, 단촐한 세간살이 데불고 이사다니던 뒤안길과 현재를 흔들어 깨우듯 ‘수저통’이 자꾸 비명을 지른다. 노을이 무심히 그 수저통을 비추고 있다. 시인의 “침묵 같은 울음”도 “따라간다.”
나는 시인과 함께 그 때 그 모항 뻘밭을 짓이기며 걸어간 적이 있다. 평생 뻘밭을 옆으로만 걷는 게, 뻘밭 짓이기며 기어가는 갯지렁이, 몇 센티 더 뛰어보겠다고 안달난 짱둥어 삶을 보았다. 저마다 이 바다에서 사는 일은 오십보백보이다.
진창의 세월을 사는 우리네 세상살이. 아웅다웅하지 말고, 내 몸 속박하지 말고 살 일이다. 이따금 그동안 고생한 내 몸 토닥이며 고마워하며 살 일이다. 내 몸이 편해야, 내 마음이 한가해야 정신도 활발하다. 그러니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말이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