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 송수권, ‘시골길 또는 술통’ 전문

요즘 누구나 언제든 동네 마트에 가면 입맛대로 막걸리를 골라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새마을노래가 온동네에 울려퍼지던 그 시절, 아등바등 살던 시절에 막걸리는 읍네 양조장에서 마을 구판장까지 배달하던 대표 먹거리 중 하나였다. 쌀이 귀했던 만큼 마을로 배달된 막걸리는 늘 일찍 동났다.
밭일, 논일이 인생에 전부이다시피 한 촌사람들에게 어쩌다 싸움 한판도 하고 그러면 그런대로... 자식농사 지으며 골머리 아프면 또 그런대로, 잔치가 열리면 열린 대로 한사발의 막걸리는 좋은 친구 역할을 했다.
이 시는 그런 시대를 함의한 한 편의 시골 풍경화이다. 시골길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고 시작한 시각화 작업은 “풀 비릿내가 바퀴살을 돌린다”로 발전한다. 잡초 무성한 시골길의 정적인 모습을 ‘바퀴살’이라는 시어로 역동적 파노라마로 되살렸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자갈과 잡초더미의 울퉁불퉁 시골길을 운전하면 막걸리통에서 먹걸리가 흘러내리곤 했다. 이를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고 표현했다. 흑백 사전첩처럼 정적인 시골길이 동적이고 역동적 풍경화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급기야 자갈들은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그렇게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굽어진 시골길을 의인화 했다. 그런 ‘시골길’은 술 취한 농민들처럼 “비틀거린다”.
“주모가 나와 섰다/술통들이 뛰어내린다/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자전거에서 막걸리를 내리는 동작을 “뛰어내린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시계태엽 감기듯 감겨들어갔다. 송수권 시인은 남도의 한을 남성적으로 승화시킨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런 시인답게 가락을 치는 기술이 정말 대단하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