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화가 주일남 회고전 ‘찬란한 고독의 여정-맥을 찾아서’

여수시 주최, 9월 18일~ 12월 7일까지 엑스포아트갤러리에서
박상건 기자 2025-09-15 17:21:58
고독한 발걸음은 홀로 마주하는 시간만큼 쌓여, 침묵 속에서 빛나는 생명의 노래를 낳는다. 백년 넘는 세월 동안 섬 끝자락에 홀로 불을 밝히고 서 있는 등대처럼, 예술가의 침묵은 내면 깊숙한 침묵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말 없는 등대가 밤바다의 길을 밝히듯, 침묵의 긴 세월은 미세한 흐름과 시간의 틈으로 흐르는 길을 재발견한다. 그렇게 이녁의 또 다른 길을 연다.


올해 나이 85세. 원로 화가 주일남의 화업이 그렇다. 여수시는 ‘찬란한 고독의 여정-맥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주일남 회고전을 특별 기획해 오는 18일 오후 2시부터 12월 7일까지 장장 80일 동안 엑스포아트갤러리에서 6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주일남 작품 '맥(脈)95-Ⅲ'(사진=섬문화연구소DB)


여수시는 이번 전시 기획에 대해 “원로 작가 주일남의 미술 세계 전반을 살펴보고 그의 창작 여정을 기념함으로써 지역 역사성을 알리고, 지역문화의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한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주일남 화가는 1961년 홍익대가 주최한 전국미술실기대회 특선을 시작으로 46회의 공모전 수상 및 다수의 단체전, 개인전시회를 개최한 64년 경력의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역 원로 작가이다. 


주일남 화가의 작품은 주로 붉은색과 파란색, 흰 물감을 바른 붓질을 사각형과 타원으로 화폭을 직조하면서 색채의 조화를 통해 감성적이면서 추상적인 색감으로 전체적 안정감을 연출한다. 


주일남 작품 '삶-기억'(사진=섬문화연구소DB)


잘게 쪼개진 면들의 유동성을 띠면서도 정지된 풍경으로 다가오고, 빛의 표현은 나른하지 않고 가볍고 홀가분하다. 일반적으로 원로 작가들에게 느끼던 일체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사라지는 지점이다. 


그렇게 작가의 심상과 시선은 무한한 공간으로 열려있다. 그런 산뜻한 색채로 기하학적 공간을 만들고, 함축된 기호와 은유를 통해 타자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무한대로 펼치게 하는 표현 기법을 사용한다. 더하여 작가는 비슷한 공간을 다시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면 전체 한 배경으로 바라보게 하는 한 차원 더 나아가는 독창적 기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작가는 모든 작품에 각기 다른 풍경 만들기를 한다.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우리 주변의 건물이 한 액자 속에서 차곡차곡 붓터치로 다듬어지고 안정된 건축미로 승화돼 예술적인 교감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전체 공간이 역동적이고 맑고 밝은 느낌으로 되살아나 우리네 가슴에 여울진다.


주일남 작품 '도시인상 22-Ⅴ'(사진=섬문화연구소DB)
 

구순을 향해 내닫는 인생의 한 지점에서 선보인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놀랍다. 화면마다 치밀한 구성과 세밀한 터치가 더욱 그렇다. 작품마다 다양한 색상과 형태, 그리고 공간 구성과 연출기법이 매우 유쾌하고 열린 공간으로 이끈다. 작가는 타자와 함께 그림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사물과 풍경을 재해석하는 공간을 제공하며 그곳에서 색다른 삶과 지혜를 일깨운다. 


주일남 화가의 사상과 철학은 비움과 여백의 삶을 영위하며 체득한 일종의 예술혼, 작가정신이다. 한려해상 여수의 끈끈한 남도정신, 남도의 한을 긍정과 희망으로 풀어낼 줄 아는 춤사위 같은 터치기법을 통해 여유와 배려, 산수정신이 깃든 내면 세계와 풍부한 감성을 구축한 결과이다. 

주일남 작품 '도시의 그림자'(사진=섬문화연구소DB)


고독의 본질은 외부의 소리를 끊어내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고독은 그렇게 비로소 내 안에서 온전한 한 줌의 빛이 된다. 삶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도 틈을 열고 길을 밝히는 영혼의 등불이 된다. 그래서 주일남 회고전 ‘찬란한 고독의 여정-맥을 찾아서’ 전시 공간은 그런 길을 찾는 고독한 군중들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할 것이다. 


주일남 회고전 '찬란한 여정' 포스터(사진=여수시 제공)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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